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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알찬 내나라/제주도

[제주한달살기] 사려니 숲길에서 물영아리 오름까지

by 딸기 먹는 몽룡이 2020. 5. 30.

칼로리 버닝 폭탄의 산책, 사려니 숲길~물영아리 오름

 

 

제주에서 지낼 때, 

한 달은 서귀포 남원(남쪽)에서 살았고,

나머지 한 달 반은 구좌읍 세화리(동쪽)에서 살았다. 

 

남원에서 살 때 같이 지냈던 친구 두 명이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은 은행에서 일을 하다가 퇴사하고 제주에서 정착하려고 하는 동갑내기였다. 

 

그 친구는 대학교 때부터 등산을 해왔고, 

온갖 장비를 갖추고 있는 프로 등산러였다. 

 

제주에서는 승마도 배우고 있었는데, 

주인 모르는 당근 밭에서 다 파헤쳐져 있는 당근들을 가져와 말에게 주기도 했었다. 

(아직도 그 당근들이 버려진 것인지, 포장하기 전 건조되고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친구는

체력도 너무 좋고, 발도 빠르고, 등산과 산책을 너무 좋아했었다. 

 

아침에 일어나보면 어느새 산책하러 나가 있었고, 

내가 아침을 먹으려고 하면 어떤 코스로 산책을 했었는지 설명하며 사과와 고구마를 먹었다. 

 

비가 오면 빗소리가 좋다고 창문 열고 기분 좋게 게으름 피우며 뒹굴거리는 나와 달리

산책을 갈 수 없다며 아쉬워했던 친구였다. 

 

그 아이와 딱 한번 오름에 갔었는데

그 이후 다시는 같이 가면 안 되겠구나... 깨달았다. 

 

민폐 끼치는 것이 싫어서 먼저 가 있으면

늦게라도 올라가겠다고 길을 비켜줬는데

그 친구는 정상을 찍고 다시 나를 데리러 내려와 옆에서 응원하며 나를 데리고 올라갔다. 

 

그러고도 아직 힘이 남아돈다며 집까지 걸어갈까? 라고 제안했었다. 

 

동갑 친구의 무한 체력을... 옆에서 지켜보며 입이.. 쩍.. 벌어졌다.

운동을 꾸준히 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표본이 우리에게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 친구에게 걷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었다. 

그 친구는 나중에 나에게 '허언증'이 있냐고 물어봤다...

 

내가 좋아하는 걷는 것의 기준과 그 아이는 너무나 달랐던 것이다. 

 

나는 30분 정도 설렁설렁 동네 한 바퀴 도는 것을 생각하며 산책을 좋아한다고 했던 것인데,

이 친구는 카카오맵에서 50분 걸리는 거리까지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데 한 시간이 안 걸리는 친구였고,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그렇게 하루에 두번 이상 산책을 나갔다 왔었다. 

 

 

나는 늘 그 친구에게 "너 좀 너무한거 아니니...."라고 했었다.

 

걸으면서 생각을 정리해야 육지에서 있었던 일들을 잊고 극복할 수 있다며 나가는 그 친구에게

같이 가자는 말이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생각할 시간을 주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 친구의 속도를 맞춰 걸으면 나는 숨을 쉴 수 없었기 때문에....

심지어 그렇게 걷고도 "너한테 맞춰서 천천히 걸었어"라는 말을 들었다.....

 

 

그랬던 우리가 물영아리 오름을 함께 오르고,

사려니 숲길도 걷고, 

다시 걸어서 집까지 갔던 것이다. 

 

 

나는 다리를 버릴꺼야 이미 망가진 다리인걸...

내일부터 아마... 난 걸을 수 없을걸....

난 이미 틀렸어....

라고 투정을 부리기도 했지만, 

사실 함께 걸었던 그 시간이 너무 즐거웠다. 

 

 

그 친구와 나는 물영아리 오름~사려니 숲길을 거의 세 시간 동안 걸었고, 

내가 준비한 황남빵과 그 친구가 준비한 빈츠와 아아를 미친 듯이 먹으며 

다시 한 시간 반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내려가는 계단은 저리도 아름답고 안락해 보이는데....

 

 

올라가는 계단은 왜 이리 야속한지.....

끝도 없이 이어지는 물영아리 오름의 계단...

 

 

30분 정도 계단을 올라가면 정상이다.

그리고 정상에서 조금만 내려가면 습지가 나오고 그곳에서는 맹꽁이? 개구리?(뭔지 모름, 구분 못함)의 소리가 들린다.

 

 

사실 내가 올랐던 오름 중에서 제일 전망이 예쁘지 않았던 오름이지만,

첫 오름이기에 기억에 많이 남는다.

 

 

내려올 때는 계단이 아닌 길로 내려왔고,

물영아리 오름의 입구 쪽에는 노루 등이 뛰어노는 아아아주 넓은 들판이 있다. 

실제로 보면 참 멋있는데.. 사진으로는....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서 요리할 힘은 없고,

시킬 수 있는 것은 치킨집 딱 한 군데인데 기다리기도 힘들어

집에 있는 감튀와 치킨을 오븐에 구워서 후딱 먹었다. 

 

 

네 시간 넘게 걸었지만

이렇게 먹으면 운동한 것보다 칼로리가 높겠지???

 

그렇게 오래 걸은 나도 칭찬,

나를 유혹해 걷게 만든 내 친구도 칭찬.

 

근데 나 걷는 거 좋아한다는 말은 진심인데 왜 허언증으로 만드니 칭구야아ㅠㅠ

너도 나도 정상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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